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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히말리아 초입의 "번지없는 주막" [1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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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용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267회 작성일 22-06-09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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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노올에 취해,셀파 장부와 함께 오늘도 ‘한잔’

 

3월30일(트래킹 둘째날 2)

 

‘산사나이여 믿지를 마라,아 가씨의 마음을. 아가씨 마음은 산 날씨와 같다오…’

 

산 사내들 사이에서 불려지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산마루로 올라서는데 아니나 다를까  날씨가 캄캄해지더니 한바탕 소나기가 쏟아질것만 같다. 마침 묵을만한 롯지가 하나 보인다. 이 곳이 '사따레’(Sattale, 1580m)인 것 같은데 민가는 보이지 않고 롯지 하나만이 덩그러니 길가에 서있다.

 

셀파 장부씨와 일정을 논의하는 순간 빗방울이 떨어진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 롯지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할것 같아 주인을 찾으니 네팔 원주민 할머니와 며느리가 나오는데 꾀죄죄한 옷차림에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에  게다가 한번도 씻지 않은것 같은 행색이다.

하루 숙박료를 물었더니 메뉴판을 내민다. 그제서야 이 롯지 이름이 ‘토롱픽 호텔’ 이라는것을 알았다.

 

주인의 외모와는 달리 메뉴판 은 인쇄된 글씨도 코팅까지 되어 있었다. 오래 되어서인지 때가 끼고 색깔은 누렇게 변했다. 내용은 일류 레스토랑의 메뉴 뺨친다. 하지만 이곳에서 할수 있는 요리는 네팔리 음식 뿐이란다 .  적혀  있는  숙박료는 120 루피(A13.50),"Kitchen Charge* 7} 200루피 (A$5.70)다. 다른 곳보다 비싼 것 같지만 할 머니의 행색을 보니 깎자는 말도 못하고 그대로 값을 치렀다. 방으로 들어가니 비닐로 막은 창문은 절반이 뜯겨져 있어 세찬 바람이 그대로 들어온다. 밖에는 본격적으로 천둥까지 동반한 소나기가 쏟아지는데… 속절 없이 한숨만 나온다.

 

방안이 어두워 불을 찾자 석유등잔을 준다. 불을 붙이자 그 을음이 길게 올라오는게 오래 켜두면 콧구멍은 물론 방안에 둔 내 살림살이마저 시커떻게 변할것 같아 헤드랜턴을 쓰기로 했다.

여기서 한시간만 더가면 ‘딸’(Tai)이라는 큰 마을이 나오고 거기엔 전기불과 뜨거운 물도 쓸 수 있는데… 그런 생각 을 하자 다소 속이 쓰려온다. 그러나 후회는 잠깐. 이 롯지의 구조가 아주 독특했다. 할머니와 며느리가 장사를 하는 주막이 따로 있는데 절벽 위에 지어 놓은게 영 아슬아슬, 위태 위태 했다.

 

주막안은 식탁 두개와 큰 화덕 하나, 그 옆에 손님이 앉는 긴의자가 있다. 짐을 풀고 화덕 옆에 앉아 락씨 한병을 시켜 마시는데 처음에는 캄캄해 몰랐지만 어둠에 익숙해지자 천장과 주위가 그을음에 시커떻다 못해 고드름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그런데,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 진다. 따뜻한 화덕과 락씨 가 있어서 그렇겠지. 창문으로 보이는 경치는 마르상디 강의 깊은 계곡을 드러내고 있었으며, 깎아지른 바위능선 위에 비구름이 걸려 있다. 혼자서 락씨 를 훌짝이며 깊은 상념에 잠겨 있는데 쿡인 푸림이 자장밥을 만들어 내왔다.

 

간만의 자장밥에 락씨까지. 게다가 분위기도 괜찮고… 오늘 한번 취해볼까. 할머니는 오랜 만에 자기 집울 찾은 손님에게 뭔가를 해 주고 싶은 눈치가 역력한데 줄것은 없고 자꾸 차만 권한다. 그러고 보니 이 집은 트래킹을 하는 외지인이 찾는 곳이 아닌듯 하다. 하긴,조금만 더 가면 좋은 호텔이 많은 ‘딸’ 마을이 있는데 초라해 보이는 이 곳에 묵을 여행객은 없으리라.

 

이 집이 주로 네팔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곳 이라는 걸 안것은 어느사이 서너명의 현지인들이 둘러 앉아 창과 락씨를 마시며 할머니, 며느리와 신나게 떠드는 모습을 보고서 였다.

락씨 한 병을 비우자 어느덧 비도 그치고 붉은 저녁 노을이 산마루에 걸려 있다. 아무래도 한 병을 더 시켜야겠다. 그 붉은 노을에 취해 창밖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데 혼자서 훌짝거리는 내모습이 안돼 보였는지 한 네팔인이 말을 건다.

 

주변을 둘러 보니 한명은 인도계 방물장수로 목걸이니 팔찌 등을 현지인들에게 팔러 다닌다고 했고, 한 명은 마낭까지 가 는 포터,또 한 사람은 인도계 네팔리로 마낭에서 근무하는 경찰이란다. 이름이 ‘페마티’인데, 마낭에서 만나기로 했다.

이렇게 넷이 한자리에 뭉쳐 한참을 이야기하다 보니 페마티 는 ‘딸’까지 가야 한다면서 자리를 떴고, 방물장수와 포터는 잠자리에 들겠다며 일어섰다. 한순간 사람이 빠져 나가자 장부씨와 나만 남았다. 푸림(쿡) 과 빠룸(포터)은 일찌감치 자리 에 누웠고.

 

갑자기 쓸쓸해진다. 산속에는 일찍 해가 지기 때문에 오후 5시에 저녁을 먹고 늦어도 7시에는 취침을 한다. 

큰 식당은 8시 까지 영업을 하는곳도 있지만 대부분 자가발전기로 돌리는 전기를 끄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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