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까마득한 절벽길, 짜릿한 스릴 [15회]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이용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453회 작성일 22-06-09 22:29본문
고소적응 위해 산행속도 늦춰, 산중 도시 ‘차매’ 에서 엽서 한장
3월31일(트래킹 셋 째날)
그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도중 내가 요리사인 ‘푸림'과 한국어로 이야기를 하자 리도는 “어떻게 네팔 언어를 그리 잘 하느냐?”고 물었다. 이스라 엘에서 온 녀석이 한국어인지
네팔어인지 구분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셀파인 장부씨 와 푸림(쿡)을 소개하고 한국 원정대와 함께 한 그들의 이력을 말해주자 믿으려 하지 않았다.
“정말 에베레스트를 올랐느냐”고 재차 물었다. 장부씨가 강가푸르나(7345m), 마나슬루 (7879m)도 올랐다고 하자 내일 날이 밝으면 자기와 사진을 같 이 찍자고 청한다.
그리고는 나 를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이런 막강한 멤버들을 거느리고 (?) 다니니 당연히 황제 트래킹 소리를 듣지..
밤이 깊어가고(겨우 8시쯤 되었을까)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리도가 하품을 하면서 일어났다. 여기서는 밤 8시만 되면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든다. 아마 내게 네팔술인 락씨마저 없었다면 이번 트래킹은 참으로 고행(?)이 되었을 터이다.
4월1일(트래킹 넷 째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밖으로 나와 보니 날씨는 잔뜩 찌푸려 있었다. 하지만 하얀 눈으로 뒤덮인 히말라야의 만년설은 한걸음 성큼 내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오늘부터는 속도를 늦춰 고소 적응을 하면서 걷기로 했다. 다음 목적지까지의 4시간 거리를 6시간으로 잡았다.
고소병을 극복하는 첫번째 방법은 무엇보다 천천히 걷고 하루에 평균 이상 고도를 높히지 않는게 좋다.
출발하기에 앞서 롯지 앞에서 주인집 아들 슈레이,딸 미마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는 미마에게 ‘한국에 가서 열심히 일해 보라’고 용기를 주었다. 여기서부터는 기온도 뚝 떨어져 방한용 스웨터를 꺼내 입었고 고산지대여서 입술이 바싹 말라가기 시작했다.
산책을 하듯 1시간쯤 오르자 ‘살라가리’라는 롯지 한채가 길 가에 오두커니 서 있다. ‘찌야’ 한 잔을 시켜 마시고는 화장실을 찾으니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었다.
히말라야 산중에 롯지라고는 달랑하나뿐이어서 ‘볼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막막했다. 일행에게 물어보니 그저 웃기만 한다 . ‘ 아 무데나 싸라는건지…’
산사태는 여기에도 있었다. 그 때문에 등산로가 바뀌어 해 발 2590m의 ‘고또’(Kotho)라는 마을까지는 절벽 위로 아슬아슬 하게 이어진 길을 따라가야 했다. 자칫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직행이다. 처음엔 스릴이 느껴졌지만 갈수록 겁이 나기도 한다. ‘락씨’라도 한잔 걸치고 가야 하는건데…
산사태로 길이 바뀌면 10분 거리를 한시간 이상 돌아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히말라야 트래킹 안내책자의 소요시간은 산사태가 많은 지역에선 절대(?) 믿을게 못된다. 위험지역을 두곳이나 통과하고 보니 ‘고또’ 마을임을 알려 주는 초르텐(불탑)이 나왔다. ‘고또’는 제법 큰 마을이고 집집마다 사과나무가 있어 제철이면 맛있는 사과가 풍성하다고 한다.
트래커들이 이용하는 아랫마을은 깨끗한 편인데 현지인들이 거주하는 윗마을은 좀 지저분하고 심지어 마부들이 말과 함께 생활하는 숙소도 있다.
현지 식당에서 ‘찌야’ 한잔과 비스켓으로 간식을 먹고는 바로옆 Check Point에서 입산허가증을 보여주는데 담당경찰이 다소 불량스러워 보였다.
히말라야 트래킹에는 곳곳에 Check Post가 있고경찰이 상주 하는데 대개는 상냥하고 친절하다. 그런데 이 곳 경찰은 내게 이것저것 불필요한 질문만 하더니 내 볼펜을 쓰고 나서는 슬그머니 자기 노트에 끼워 넣었다. 볼펜을 달라고 하자 자신도 모르게 그랬다면서 “그펜,나에게 줄 수 없냐?”고 묻는다.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다면 기분좋게 주었을텐데… 하는 행동이 괘씸했지만 줘 버렸다.
‘고또’에서 ‘차메 ’ (Chame, 2630m)까지는 30분 거리다. ‘차메’ 는 트래킹을 시작한 이후 만났던곳중 가장 큰 마을이다. 경찰서, 병원,우체국도 있다. 33루피(A$1.00)를 주고 엽서(우 표 포함) 하나를 사 시드니의 아내에게 편지를 쓰려니 문득 집 생각이 났다. 집을 떠난지 겨우 12일째인데,이미 몇 달이 지난것 같고 식구들 생각이 간절했다.
번잡한 상가를 지나 마을 끝 다리를 건너는데 앞쪽으로 눈에 익은 글자 하나가 시선을 끈다.
‘山莊’이라고 쓰여진 간판 이었다.
- 이전글황량한 벌판, 바라땅에서 하룻밤 [16회] 22.06.09
- 다음글"마운틴 뷰" 에서의 하룻밤 [14회] 22.06.0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