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황량한 벌판, 바라땅에서 하룻밤 [1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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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용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171회 작성일 22-06-09 22:39본문
부슬비 속에서 화덕 불피우고 마시는 '락씨’ 일품
4월1일(트래킹 넷 째날 3》
그러나 장부씨가 권한 야크고기는 육질이 질겼고 맛도 그저 그랬다. 그런데도 장부씨를 비롯해 빠듬 등은 잘도 먹는다. 저녁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두 사람이 옷을 잔뜩 껴입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내가 이미 ‘찜’해 놓은 창고로 들어가며, “추우면 들어오라”고 하자 얼른 들어온다.
그들은 캘리포니아에서 온 미키와 캐나다에서 온 크리스였다. 산행 도중 크리스가 감기에 걸렸고 게다가 고소증 초기 증세인 두통이 있어 ‘차메’를 떠난지 불과 두 시간밖에 안되었지만 이 롯지에서 쉬는것 이라고 했다. 화덕이 있는 창고를 마음대로 쓰고 술(락씨)까지 마시는 것을 본 이들은 조금 놀라는 눈치였다.
내가 락씨를 마시겠느냐고 묻자 그들은 ‘락씨가 뭐냐’고 물었다. 컵에 조금 따라 내밀자 맛을 보고는 '좋다’고 한다. 하지만 고소증세에 주눅이 든 눈치였다. 트래킹 안내책자에 ‘고소증세가 있을 때는 술을 마시지 말라’고 되어 있으니 당연히 주눅이 들수밖에. 트래킹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토롱라’의 현재 상황을 물어보길래 “지금은 좋지 않지만 5일쯤 후에 도착 예 정이므로 It doesn*t matter!”라 고 말하자 조금은 안심하는 것 같았다.
이제부터는 고소병도 문제지만 날씨가 더욱 걱정이었다. 따뜻한 창고 건물을 나와 룸으로 들어가자 너무 추워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옷을 잔뜩 껴입고는 침낭 속으로 들어가 덜덜 떨었다. 나는 새벽이면 꼭 화장실엘 가는 습관이 있는데 이번 트래킹 중에서. 이습관은 여간 큰 고통이 아닐 수 없었다. 대부분의 호텔이나 롯지가 화장실을 따로 마련해 두고 있기 때문 이다. 새벽에 ‘볼일’ 때문에 잠이 깼지만 너무 추워 일단 참기로 했다.
4월2일(트래킹 다섯째날 1)
기온이 뚝 떨어졌다. 일어나 밖을 보니 얼음이 꽁꽁 얼어 있었다. 이 곳 ‘바라땅’은 해발 2840m인데 우리가 통과해야 할 정상인 ‘토통라’는 5416m인 만큼 그 곳의 추위가 벌써부터 실감났다. 여기에 비가 오면 그 곳에는 함박눈이 내린다. ‘차메’에서 털장갑을 구입할 걸… 이틀 뒤에 도착하는 ‘마낭’에서 구입키로.하고 미루었더니, 괜시리 후회가 된다. 하지만 해가 뜨자 기온이 조금 올라간다. 오늘 아침부터는 느긋하게 행동하기로 했다. 오늘의 목적지인 훈데(3325m)까지는 약 4시간 코스지만 고소적응을 하면서 천천히 걷기로 하고 넉넉히 7시간으로 계획을 잡았다.
날씨는 쾌청한데,바람이 강하게 불어 체감온도는 뚝 떨어진 상태였다. ‘바라땅’을 출발 한지 30분쯤 되자 앞에 바위로만 이루어진 산(4000m급) 하나가 눈을 하얗게 덮어 쓰고 있었다. 쾌청한 날씨, 햇살을 받은 흰 눈이 유난히 반짝이는 게 장관이다. 선글라스를 쓰지 않고 는 마주볼수 없을 정도였다. 출렁이는 구름다리를 건너 언덕으로 올라서자 허름한 찻집 하나가 눈에 띈다. 활발한 성격의 세 자매가 운영하는 곳으로 여기서도 어김없이 찌야 한잔을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히말라야 트래킹의 요령 중 하나는 바로 이것이다. 트래킹 도중 만나는 찻집에는 꼭 들러 네팔 전통차인 찌야를 많이 마시라는 것이다. 그것이 고소증을 예방 하는 지름길이다.
여기서 평평한 길로 한 50분쯤 가다 보면 ‘두쿠레 포카리’ 라는 곳이 나오는데 지금 한창 롯지와 호텔이 건축 중이다. 높은산에 둘러 싸인 아늑한 분지 로 주변 경치도 일품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두쿠레 포카리’ 마을을 나오자 조그마한 호수가 있고 소나무 숲이 어우 러진 멋진 경치가 펼쳐진다. 여기까지 오면서 본 가장 환상적인 경관이었다.
바로 이 곳에서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피상피크’ (6091m) 봉우리가 보이고 반대 로 시선을 두면 그 유명한 ‘안나푸르나’ 2봉의 끝자락이 눈에 들어온다.
‘피상피크’는 이처럼 낮게 보이고 실제로 히말라야의 여러 봉우리 중에서 낮은(?) 것도 사실이지만 등정 과정에서 많은 산악인들의 목숨을 앗아간곳 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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