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마침내, "토롱라" 정상에 서다 [2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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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용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6,066회 작성일 22-06-09 23:17본문
동상위험 등 악전고투 끝에… 하산길에는 탈진까지
4월7일(트래킹 열홀째 2)
아무튼 셀파인 장부씨를 리더로 세우고 다음에 필자가 뒤로 포터인 ‘빠듬’이 마지막에 쿡인 ‘푸림’이 섰다. 장부씨와 나는 헤드랜턴을 착용하고 푸림은 대형랜턴을 켰다.
출발을 하고보니 아니나 다를까 등산로에 눈이덮혀 길이 희미하다.
‘토롱페디’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출발했기 때문에 발자국이 하나도 없다. 먼저 출발한게 은근히 후회가 된다. 하지만 급비탈인 하이캠프 (5100m)까지 1시간20분 만에 도착하니 벌써 독일팀(남 3, 여 1)이 가이드 2명과 함께 출발준비를 하고 있었다.
장부씨에게 차를 한잔 시키면서 독일팀을 먼저 출발시키면 저절로 러셀(눈을 다지면서 나아가는방법)이 될 것이니 우리는 나중에 출발하자고 했다.
독일팀이 출발하고 우리는 15분 뒤인 새벽 4시50분에 뒤를 따랐다. 하이캠프까지는 그런대로 바람이 거세지 않았는데 이 곳에서부터는 완전히 강풍이다. 독일팀이 러셀해 놓은것이 강풍 탓에 별 쓸모가없다.
장부씨와 내가 새로이 길을 내면서 나아갔다. 한 30분쯤 되자 발가락과 손가락이 마비돼 온다. 털장갑도 소용없다. 고어텍스장갑 이어야 하는데… 등산화도 이런 눈발 속에서는 고산용 이어야 한다. 중등산화는 아무 소용이 없다.
산을 안다는 내가 겨우 이렇게 밖에 준비하지 못했으니… 사실 이번 트래킹에서는 그렇게 눈 걱정을 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우모복과 우모침낭 정도만 준비했던 것이다.
손가락을 비비면 어느 정도 안심이 되지만 발은 눈에 젖어 마비돼 가는것을 어찌할수 없다. 이러다 동상이라도 걸리면 여간 큰 일이 아니다. 대책이 없다. 정상까지 가야 대피소겸 찻 집이 나온다.
이제는 감각은 커녕 발이 아파온다. 무감각에서 저려오다가 아파오면 상태가 안 좋다는 징조임을 알고 있기에 걱정이 태산 같다. 눈 속에서 길은없고 무릎까지 빠지는것을 악전고투 하면서 하이캠프를 출발한지 3시간 15분만인 아침 8시05분에 드디어 토롱라 정상(5416m)에 도착했다.
감격도 잠깐. 대피소에 들어가자 마자 신발과 양말을 벗고 마사지를 시작했다. 한참을 주무르자 그제야 감각이 돌아온다. 마른 양말로 갈아 신었지만 이미 등산화속은 젖을대로 젖어있어 안심이 안된다. 문득 산 친구 유동옥(80년 안나푸르나 원정대장)이 생각난다.
이 친구는 안나푸르나 원정때 동상에 걸려 발가락을 모두 절단한 친구인데,그런대도 아직도 산에 열심히 다닌다. 네팔에 오기전 서울에서 전화통화만 했다. 지금은 부산에 살고 있지만 히말라야에 갔다 오면 오랜만에 쏘주나 마시자며 서울에서 만나기로 했다.
어했든 오늘 산행은 트래킹이 아니라 완전히 적설기 등반이다. 다행히 입산통제는 없었고 하늘에는 구름한점 없이 쾌청하다. 강풍도 많이 가라 앉아 그야말로 토롱라 정상은 최상의 상태로 설원풍경을 마음껏 만끽할수 있었다.
사진촬영을 하고 간식으로 가져온 삶은 계란, 비스킷,치즈, 밀크티를 먹으며 휴식을 취한후 다시 출발준비를 했다. 방금 먹은 치즈는 시드니에서 아내가 준비해준 것으로, 빨간초속에 들어 있어 날씨가 더우나 추우나 전혀 상할일이 없고, 조그맣게 하나씩 포장돼 있어 비상식량이나 간식으로는 그만이다.
먹을때마다 아내가 생각나는것을 보면 우리 집사람도 참 고단수(?)다.
정상에서 좀더 쉬고 싶어도 머리가 아파 빨리 내려가고 싶은 생각뿐이다. 고소증세에서 벗어나는 길은 첫째도 하산, 둘째도 하산뿐이다. 벌써 독일팀은 출발을 했고 우리도 서둘러 하산했다.
정상부터 하산하는 길에 등산로는 하나도 없고 단지 먼저 출발한 독일팀이 남긴 발자국이 희미 할뿐이다. 낭떠러지 옆으로 난길은 위험하기도 하지만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내려오자니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신경쓰며 몸의 중심 까지 잡아야 한다. 스틱을 쥔손이 아파오면서 정신이 하나도 없다.
얼마쯤 내려오는데 독일팀의 가이드 하나가 ‘그리세이딩’(눈 덮인 경사면에서 무릎을 구부리고 미끄러져 내려오는 기술)을 한다. 내가 보기에도 돌아가려면 꽤 먼거리에 힘이 들고 '그리세이딩’을 하면 직선거리 를 가로지를수 있다. 가파른 경사인지라 위험하지만 시간도 단축되고 힘도 비축할수 있을것 같아 우리 팀에게 제안하자 ‘푸 림’과 빠듬’은 걸어 내려가겠다고 했고 장부씨와 나는 100m가 넘는 급경사를 ‘그리세이딩’으 로 내려왔다.
하지만 편안함도 잠시. 계속되는 급경사로 기진맥진이다.
정상을 떠난지 3시간쯤 됐을까 도저히 발걸음을 뗄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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