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만년설과 전설에 쌓인 샹그릴라을 찾아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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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용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173회 작성일 22-05-24 01:21본문
만년설과 전설에 쌓인 샹그릴라을 찾아,
본지는 시드니에 거주하는 산악인 이용학씨의 히말라야 트랙킹 기행문을 주간으로 연재한다.
알피니스트 이용학씨는 올해 3월 24일부터 4월 14일까지 히말라야 트랙킹을 다녀와 신비로운 히말라야의 준봉으로 독자들을 인도하는 기행문을 보내왔다.
만년설이 없는 호주에서 읽는 그의 히말라야 트랙킹 기행문은 한줄기 시원한 샘물처럼 산에 대한 갈증을 가셔줄 것으로 기대되며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을 기대한다. [편집자주]
네팔을 떠나온지 벌써 석달이 지났다.
그 사이 장엄한 산천은 변하지 않았겠지만 네팔에서 들려 오는 소식은 우울하기 짝이 없다.
디팬드라 왕세자에 의한 왕실일족 피살사건 그리고 날로 기세를 높이고 있는 모택동주의를 신봉하는 네팔 공산주의자 들의 대정부 투쟁 소식 등등은 네팔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에 일말의 불안감을 던져 준다.
그래서인지 지난번에 다녀 오지 않았더라면 평생의 한으로 남을 뻔한 히말라야 네팔은 도시문명에 찌든 현대인들에게 아직도 미지의 상그릴라로 알려진 곳. 만년설에 뒤덮인 히말라야의 거대한 산맥을 품에 안고 앞뒤 로 중국과 인도 두 대륙을 사이에 낀 오지로 부분적인 개방만 허용하고 있는 불가사의한 땅이다.
'19세기 들어 외부와 접촉,
네팔은 힌두왕국과 산악국가로 유명하다.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8,848m)를 포함해 지구상 8000m급 14개의 고산준봉(高山峻峯) 중 무려 8개가 네팔에 소재하고 있다.
현재는 많은 산악인들과 현대 문명을 거부하는 자연주의자들 에게 성지로 알려진 곳이지만 힐러리경이 최초 히말라야 등정에 성공한 '1953년대 까지는 은둔국가로 알려져 있었다.
네팔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반으로 인도를 지배하던 영국인들이 히말라야 산악지대를 통과하는 중국과 연결 통로를 찾기 위해 지질학자를 중심으로 한 탐사단을 파견하기 시작하면서였다. 네팔탐사를 주도한 단체는 영국 왕립지리학회 (Royal Geographic Society).
이전까지 네팔은 만년설과 전설에 쌓여있는 땅으로 수백년 간 외부와의 접촉을 단절한 은둔 힌두왕국이 었다.
네팔은 동서양 인종의 교류장 이기도 했다 . 기원전 부터 시베리아 동토에서 남하하기 시작한 몽골 로이드(Mongoloid, 현재의 몽고족의원형)는 티벳과 네팔,그리고 버마와 태국 산악지역까지 진출한다.
유목민족 몽골로이드가 택한 길은 중앙아사아 초원지대로 농경지대인 중국이 아니었다. 이 길은 12세기 부터 티벳과 몽고를 잇는 활발한 무역교류로 재 등장 하지만 동서양을 잇는 실크로드에 비교하면 역사적 조명을 별로 받지 못했다.
한편, 중동과 서아시아,그리고 인도까지 진출한 백인계의 코카노이드(Caucanoid)는 네팔까지 진입한다.
이러한 동서양의 대표적인 종족의 교류가 이루어진 곳이 네팔이었다. 이런 연유로, 네팔에는 몽골로이드가 지배적이지만 엄연히 코카노이드의 피가 흐르고 있는 혼혈민족 이다.
전설에 의하면, 카투만두 계곡은 히말라야에서 녹아 내린 물이 고여 형성된 거대한 산정호수였다고 한다.
Manjushri 란 신화적인 존재가 칼을 휘둘러 호수의 외벽을 부셔 물이 흘러내려 계곡이 이루어졌으며, 인도 문명의 탄생지인 갠지스강까지 이루는 장대한 여정이 시작되는 곳이다.
Manjushri 는 만수보살이란 불교식에서 파생된 신화적 존재이지만 힌두교 에서는 크리쉬나(Krishna) 라고 달리 부른다. 동일한 신화적 존재가 시대를 달리해 불교와 힌두교에서 서로 달리 호칭 된다는 것은 흥미 있는 일이다. 그만큼, 네팔에는 불교적인 요소와 힌두교적인 영향이 혼재되어 있다. 20th ~ 26th July,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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