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은 오를 때보다 내려갈 때가 더 힘들다" [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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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일차(계속) : 키보 산장(4700m) - 킬리만자로 정상(5895m) ᅳ 키보산 장 — 호롬보산장 (3700m)
필자가 3차 큼부히말라야 트레킹때 투클라(4624m)에서 에베레스트 B.C로 오르자면 그 곳에서 죽은 산악인들의 추모탑인 묘석(墓石 Tombstone) 들이 즐비한지대를 지나게 된다.
지금도 생생한,그 곳에서 느낀 감정 은 산악인들은 왜 하나 밖에 없는 목숨 을 걸고 위험한 도전을 할까 하는 것이 었다. 명예,아니면 자기만족일까? 그 것보다 하얀 설산 위에 자신의 모든 것 을 던져 도전하는 자기와의 싸움이 아닐까? 하지만 그 싸움 속에서 진정한 승자도 패자도 없이 하얀 고독을 안고 말 없이 사라져 간 많은 산사람들… 우리는 그들의 희생 속에서 내일의 도전을 꿈 꾼다.
정상을 뒤로 하고 내려오는 길은 또 다른 도전의 시발점이다. 라인홀트 메스너(이탈리아의 산악인으로 히말라야 의 8000미터 이상 고봉을 의미하는 14 좌를 최초로 모두 등정하고,특히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산을 홀로 무산소 등정한 최초의 사람이기도 하다 편집자) 는 ‘정상은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 이 더 힘들다’고 했다. 조심 또 조심 해야겠다.
나는 우후르봉과 이별하면서 다시 한 번 내 자신을 추스려 본다. 간밤의 혹독한 추위를 까맞게 잊고 언제 추웠느냐는 듯 해가 중천에 오르니 따가운 햇볕이 곧바로 내리쬔다. 아니나 다를까 선크림 바르는 걸 깜빡 했더니 화상으로 콧잔등이 쓰리기 시작한다. 5000m 이상의 고산에서 산소는 평지의 절반이고 햇볕은 해변가보다 3배정도 강하다.
길만스 포인트에서 내려다 보는 등산로는 어떻게 저 길을 을라 왔나 싶을 정도로 급경사 길이다. 쑥쑥 빠지는 화산재 길을 양손의 스틱에 의지한 채 지 그재그로 올라온 길을 직선으로 내려간다. 나중에는 다리 힘이 풀려 아티브를 붙잡고 내려오는데도 힘이 든다. 내려 오면서 널브러져 있거나 구토하는 사람,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들을 보니 내 자신이 대견스럽기도 하지만 나도 이젠 거의 탈진상태다.
키보 산장을 떠난지 10시간20분만에 돌아오니 먼저 도착한 일행들이 박수로 맞아준다. 나는 바로 침대에 쓰러지면서 가지고 간 우황청심환을 먹고 안정 을 취한다. 우리 일행중 한 사람이 키보 산장에 도착해 고산증세로 쓰러진 걸 마침 천만다행으로 이탈리아 등반팀 의 의사가 주사를 놓고 응급처치 해주 어서 큰 일을 모면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찌나 고마운지 이것이 바로 산에서 곤경에 처한 사람을 보면 무조건 도와주는 산사람들의 우정일 것이다.
잠 한 숨도 못자고 그 험하고 어려운 길을 갔다왔으니 한없이 쉬고 싶고 밥맛도 없지만 그래도 늦은 아침밥 을 조금 뜨고는 내려갈 채비를 한다. 지금부터 오늘의 종착지인 호롬보산장 까지 3시간을 더 내려가야 한다. 그나마 우려했던 왼쪽 무릎은 떠나올 때 걱정하면서 딸 민정이가 사준 스포츠 압박밴드를 하고 많이 좋아졌다. 돌아가서 효과만점이었다고 하면 좋아하겠지….
산장을 나서자 안개비가 온 주위를 잿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가뜩이나 힘 든 나는 내려갈 생각에 우울해진다. 을려다 본 하늘은 비구름에 아무 것도 보이질 않는다. 얼마전까지 저 산 정상 위에서 감격했던 순간들이 꿈만 같이 느껴진다.
이제부터 마지막 사투를 벌여야 한다. 지칠대로 지쳐버린 나는 터벅터벅 내딛는 발걸음 속에서도 킬리만자로와의 헤어짐이 아쉬워 행여 모습을 보여 주지 않을까 자꾸만 뒤돌아 보지만 끝내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사막지대를 지나면서 안개비가 이슬비로 변하면서
나는 킬리만자로와 마음속에서 이별을 고한다. 지루하고 힘든 이 길은 언제쯤 끝이 날까. 가도 가도 끝이 안 보인다.
그래도 언젠가는끝이 보이겠지.
오늘은 정말로 힘든 날이다. 하지만 뿌듯함과 성취감 속에서 어려웠던 모든 것을 다 날려 보낼 수 있었다. 그저 생각나는 건 호롬보 산장에 도착하면 원 없이 킬리만자로 맥주를 마시는 것이었다. 기다시피 들어온 호롬보 산장이 꼭 오랬만에 돌아온 집같이 느껴지는 건 오늘밤까지 포함해 3일을 묵기 때문이다.
도착하자마자 포터가 가져다 준 뜨거 운 물 한 바가지로 이틀만에 손발을 씻어 본다 오늘 하루 아티브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무사히 산행을 마칠 수 있었 다. 정상을 오르기 전 호롬보 산장에서 제일 부러웠던 것은 정상에 다녀온 팀들의 자축파티였다. 그걸 보면서나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러나 정상 등정 후 마시기로 내 자신과 약속한 후 꾹 참고 있었다. 참느라고 엄청 힘들었지만….
우리 일행 모두 정상등정한 것을 킬리만자로 맥주로 자축했다. 비상용으 로 꼬불쳐 두었던 위스키까지 끄집어 내 폭탄주를 만든 건 바로 나였다. 그 버릇 참…. 키보 산장에서 우리 일행을 살려 준 이탈리아 의사에게 맥주 한박스를 보낸 건 당연한 일이고…. 몸은 가눌 수 없을 정도로 힘들지만 마음은 홀가분하면서 너무 행복하다. 그러면서 킬리만자로의 마지막 밤을 아쉬워 할 새도 없이 그냥 끓아떨어진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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