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시간 넘게 계속되는 지긋지긋한 급경사면은 언제쯤 끝날까…” [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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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일차(계속) : 호롬보 산장(3720m) → 키보 산장(4700m)
끝없는 고원지대가 사막화 되어 버린 등산로는 평소 화산재와 잔돌들로 먼지 가 풀풀 날리는 길이지만 오늘은 진눈 깨비로 먼지와 따가운 햇살을 피할 수 있어 등반하기에는 조금 편할 수 있다.
하지만 킬리만자로의 아름다운 풍광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키보산장이 가까울수록 진눈깨비가 눈으로 바뀌더니 힘들게 도착한 산장에는 제법 흰눈이 쌓이고 있었다. 주위에 현지 포터들만 없으면 꼭 히말라야에 들어와 있는 착각이 든다. 미리 도착한 가이드가 배정받은 우리 방의 내부는 6 개의 이층 침대와 홀 가운데에 식탁이 놓여 있다. 일행 모두 아래칸을 차지 해 위로 올라가는 번거로움은 없었다. 올라오는 동안 두통과 추위에 지친 나는 침대에 침낭을 펴고 바로 퍼져 버렸다. 젖은 옷을 말리거나 의지할 불 조차 없는 산장에서 침낭 속만큼 따뜻한 곳도 없다 만사가 귀찮고 그냥 쉬 고만 싶다. 일행 모두가 대화를 나눌 힘도 없다는 듯이 조용히 누워만 있었다.
그 때 이탈리이아 팀 6명이 들어와 2 층 침대로 올라가며 북적거린다. 아무래도 조용하게 쉬기는 틀린것 같다 오늘밤 12시에 정상 공격을 하기 때문에 저녁은 5시쯤 일찍 먹고 다시 침낭 속으로 들어간다. 야간산행을 위해 잠시라도 잠을 자둬야 할텐데…
저녁 늦게 잠이 들었을 무렵 위 침대 의 이탈리아 여성이 부시럭거리며 삐걱거리는 소리까지 내고 있다. 신경이 날카로와진 나는 좀 조용히 하라고 한마디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자기는 틀렸고 다행이 두통은 나지 않는다.
11시반에 솔로몬과 아브라함이 와서 깨운다. 눌은밥과 스프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야간산행을 준비한다. 아래는 내복에다 바지 위에 오버트로우저까 지,상의는 이중으로 된 파일 자켓을 입었다. 비록 몸이 둔해 걷기에는 불편 하지만 지금 밖의 체감 온도가 영하 20 도쯤 되는 것을 감안하면 이렇게 입는 게 좋다. 고산에서는 추위에 많이 노출 되면 고산병이나 하이포서미아(저체온 증에서 오는 탈진)에 걸릴 위험이 있기 때문에 방한에 신경을 써야 한다.
제5일차 : 키보 산장(4700m) → 길만스 포인트(5681m) → 키보 정상(우후르피크 5895m) → 키보 산장 →호통보 산장(3720m)
드디어 12시15분에 산장을 출발한다. 전부 헤드 랜턴을 착용하고 선두에 워킹가이드 아브라함이,중간에 아티브, 후미에 수석가이드 솔로몬이 섰다. 자정에 출발하는 이유는 화산재와 잔돌들 이 덮힌 등산로가 얼어 있어 돌들이 부서지며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이고 또 정상부근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서다. 그러나 환한 대낮이라면 까마득한 급경사를 보고 공포감을 느껴 올라갈 엄두도 못낼 것이란 생각이 든다.
산장을 나서자 완만한 경사길도 잠시 가파른 직벽이 시작된다. 칠흑 같이 어두운 밤에 헤드랜턴 불빛만 의지한채 급경사면을 지그재그로 느릿느릿 오른다. 위로는 먼저 출발한 다른 나라 팀 들의 랜턴 불빛이,그리고 우리 뒤로 올라오는 팀들의 불빛이 일렬로 길게 이어져 보이는 것이 장관이다.
점점 호흡이 거칠어지고 다리는 무거워진다. 캄캄한 밤이라 어디쯤 올라온 것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 호주에서 구 입한 고도계는 아루사 호텔 사워실 바 닥에 떨어져 고장이나 아쉬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중국제라 그런가? 쉬고 오르기를 반복하면서 고도 5000m는 훨씬 지났으리라생각했는데 ‘월리암스 포인트’(해발 5000m)라는 이정표가 보 인다.
거의 2시간을 올라왔지만 1차 목표인 길만스 포인트의 삼분의 일도 못 왔다 는 것이 아닌가. 순간 맥이 탁 풀린다. 설상가상으로 배낭 속의 물이 얼어버려 목이 말라도 마실수가 없고 찬바람이 어찌나 센지 털장갑 속의 손은 꽁꽁 얼어 마비증세가 온다. 손을 비비고 스틱을 잡았으나 감각이 없었다. 이러다 동상이 걸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너무 힘들다.
24시간 안에 해발 3720m에서 5895m를 오른다는게 어디 쉬운 일인가. 이번 산행을 준비할 때부터 ‘나이 생각 해서 무리하지 말라’는 아내의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수없이 들었는데, 내가 너무 만만하게 본 것은 아닐까? 다시 기운을 차려 보지만 물과 비상 식량이 든 가벼운 배낭도 멜 기운이 없어 아티브에게 주었다. 자꾸 뒤쳐지는 나는 일행에게 지장을 줄 것 같아 먼저 가라고 하고 아티브와 둘이서 오른다. 우리 팀은 20대 한 명,30대 두 명,
40대 두명,그리고 60대인 필자로 구 성돼 있다. 지금까지는 지장없이 잘 버티어 왔으나 여기서부터는 체력이 달리기 시작한다. 그나마 고산 등반의 경험이 많아 이번에는 고산병으로 힘들지 않은게 다행이다. 가도 가도 능선 위에 있다는 길만스 포인트가 나오질 않는다. 이 지긋지긋한 급경사면은 언제쯤이면 끝이 날까?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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