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를 떠나며… [16 마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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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로비 시내 한가운데의 카페에서 목도 축이고 피곤한 다리도 쉬게 하기 위해 맥주를 마시고 있다. 주위에 온통 검은 사람들로 백인이나 동양인은 별로 보이질 않는다. 하긴 이 시간에 관광지를 둘러보지 않고 한가하게 매연 속의 복잡한 시내를 돌아다닐 사람은 없겠지.
커피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시내의 대형 슈퍼마켓을 찾았다. 커피 중에 최고로 꼽히는 케냐 산의 블루마운틴은 현지인 여기서도 고가품이었다. 짐 걱정만 아니면 많이 사서 가까운 지인 들에게 선물 하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에서 들었다 놓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조금만 샀다.
필자는 여행하면서 거의 쇼핑을 하지않는 편이다. 배낭 메 고 다니면서 짐을 하나라도 줄여야지 늘리면 힘들게 뻔하니 …. 그러나 단 한가지 지도는 필요 이상으로 많이 구입하곤 한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서 지도를 보고 있노라면 다녀 왔던 여정이 한 눈에 떠오르기 때문에 지금도 지도를 많이 가지고 있는 편이다.
한나절을 나이로비 다운타운 에서 보내고 다시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이 아프리카의 마지막 밤이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소주를 곁들인 저녁으로 아프리카의 고수와 함께 밤이 다가도록 아쉬움을 달래 본다.
드디어 아프리카와 이별하는 날이다. 오후에 카타르항공 편 으로 나이로비를 출발,도하를 경유해 서울로 들어갈 예정이다 . 아침에 짐 정리를 끝내고 남는 시간을 유엔이 지정한 세계3대 빈민마을 중 하나인 ‘키베라(KIBERA)’를 가보기로 했다.
한국가든의 이 사장이 종업원 한명을 동행시켜 주신다. 숙소 에서 걸어서 한 20분 걸리는 키베라는 이방인에게는 무척 위험해 아무나 들어가지 못한다. 현 지 종업원도 빈민촌 안까지 동행 하는게 아니고 입구 에서 조금 들어간 골목의 어느집까지 안내하고 돌아간다.
이 집에는 28세의 ‘바나바’ 부부가 2살된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문도 없어 장막을 들치고 들어간 집 내부는 어른셋이 앉기도 좁을 정도였다. 가구라곤 큰 천으로 가려져 있는 침대가 전부였다. 아침식사 중 이었는지 빈 접시 하나에 빵가루가 남아 있었다. ‘바나바’의 아내가 차 한 잔을 따라 준다. 엄마 품에 안긴 아기는 신기한 듯 나를 물끄러미 쳐다 보는게 너무 귀엽다. 이름을 물어보니 " 라운" 이란다 문득 시드니의 손자 녀석이 보고싶어 진다.
"바나바"가 옷을 갈아입고 본격적으로 빈민촌을 안내하며 설명도 해준다. ‘KIBERA’는 현지 언어로 ‘숲’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인구는 100만명이 넘을 거라고하는데 확실한 통계도 없는것 같다. 집들은 얕트막하게 판자조각과 진흙과 녹슨 양철로 지었는데 땅과 집 주인들은 주로 고위 관료들로 약 200채씩 단위로 가지고 있다고 한다.
상하수도 시설은 없고 한 가구가 5-6평 정도의 방 한두칸 짜리에 산다. 월세가 23호주달 러 정도이며 전기세는 월 3달러 정도 깨끗한 물은 20리터에 75센트 지하수로 올린 물은 반값이라고 한다. 난방은 없고 취사연료는 숯을 사다 쓰는 데 대부분 하루에 한두끼 밀전병 같이 생긴 빵을 사다 먹고 집에서는 취사를 별로 하지 않 는다고 한다.
일자리가 있는 사람은 월 130달러면 4인 가족이 빠듯하 게 살아가고 일자리 없는 사람은 자연스레 범죄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바나바’는 주민들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 대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얼마 전에도 외국 방송사의 기자가 살해당했다는 말에 긴장을 늦추지 않고 ‘바나바’의 뒤를 바짝 따라 걷는다. 경찰도 오후 5시 이후는 돌아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좁은 길은 주민들이 내다버린 온갖 쓰레기와 음식물로 뒤덮혀 있고 흘러 내려가야할 시궁창은 오물과 인분들로 막혀 심한 악취와 파리,모기로 뒤덮혀 있다. 나는 주위를 볼새도 없이 발 디딜곳을 찿으며 걷는다. 한마디로 위생이란 개념조차 상실한채 살아가는 곳이다.
골목 안에 초등학교가 있고 집과 집사이의 공터가 운동장 인데 그나마 반이상이 오물로 뒤덮혀 있었고 한쪽에선 아이 들이 뛰놀고 있었다. 이런 모습 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백만명이 산다는 이곳에 변변한 건물도 없이 미로와 같은 좁은길 과 골목 속에는 그래도 사람 사는곳이라 있을 건 다 있었다.
시선을 끄는 건 흔하게 보이 는 비디오방인데 안을 들여다 보니 캄캄한 좁은 공간에 다섯 명 정도가 앉는 긴 널판지 의자가 2개 있고 조그만 TV가 앞에 있는게 전부다. 하긴 이 곳에 변변한 위락시설이 있을수 있을까. 여기서는 중국의 쿵 푸영화가 제일 인기있다고 한다. 중국정부가 자원확보를 위해 아프리카에 쏟는 열정은 대단하다. 도로공사 현장에서 중국사람들을 흔하게 볼수 있었고 그 들과 함께 들어온 문화가 중국 영화가 아닐까?
오늘도 돈을 모아 고향으로 돌아가길 꿈꾸며 이 곳에서 살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빈민촌에서 태어나고 죽는다.
이곳의 충격적인 생활상들은 영화 또는 기록물들로 알려져 있지만 직접 와서 보면 할말을 잃게 만든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빈민 촌은 사방 7km로 다닥다닥 붙은집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저멀리 ‘키베라’가 끝나는 너머로 고층아파트가 건설되고 있었다. ‘저기는 또 누군가 선택받은 사람들의 보금자리겠지.’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 고층아파트와 빈민촌을 보니 마음이 무거워 진다.
‘바나바’와 3시간을 걷고 있는데 끝이 보이질 않는다 ‘더 갈거냐’고 묻는데 공항으로 떠나야 할 시간이 다 되기도 했지만 지치고 힘이 들어 ‘그만 가자’고 말했다. 돌아오는 길에 쓰레기 더미 앞에 노숙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널부러져 있다. ‘바나바’의 설명이 충격적이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배고픔 을 잊기 위해 본드냄새에 취해 누워 있다는 것이다.
이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나?
이 땅에 태어난 죄가 이토록 가혹한 것일까? 무거운 발걸음 속에 ‘바나바’의 아이들이 떠올라 생활비에 보태 쓰라고 얼마간의 돈을 그에게 주었다.
숙소로 돌아와 한국가든의 이 사장과 종업원들의 환송을 받으며 공항으로 향한다. 아프리카에서 아름다운 풍광과 친절한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고 그러나 그곳의 심각한 문제 또한 잊을 수가 없다. 단지, "아프리카는 가난 하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지금 케냐에는 HIV 양성자가 220만명 이고 ‘키베라’에만 전체 환자의 20%가 있다고 한 다
거기에다 온갖 질병들이 무 섭게 퍼져 있으나 의료시설마저 열악한 실정이다. 과연 아프리카의 미래는 어떠할까? 이 곳을 떠나며 필자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하나의 큰 숙제를 안고 떠난다.
<끝〉
킬리만자로 등정기를 마치면서 ...,
16회 걸쳐 등정기를 연재할 수 있도록 해준 한국신문과 보잘 것 없는 글이지만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지구온난화로 서서히 그 모습을 잃어가는 킬리만자로를 보면서 자연의 재앙이 얼마나 무서운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고 가난의 질곡과 무서운 병마 속에서 신음하는 그 곳 사람들을 보면서 인간의 재앙 또한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이제라도 우리가 제3세계로 눈을 돌려 관심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등반과 여행속에서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는 흑인들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위험한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희망사항이지만 ‘아내의 윤허’가 내려진다면 다음에는 남미의 아콩카쿠아를 등반하려고 합니다
묵은 배낭의 먼지를 털면서 다시 독자 여러분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람니다.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2008년 9월 필자 이용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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