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호 산악인/이용학씨 킬리만자로 등정…, 한국신문/로고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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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트레킹 세 차례에 이어, 9월12일 아침에… 등정기 본지 연재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일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죽는
눈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 • •
한국의 ‘작은 거인’ 조용필이 지난달 27일 전북 전주에서 자신의 히트곡인 "킬리만자로의 표범" 이란 제목으로 가수 인생 40주년 기념 콘서트를 가졌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헤밍웨이가 자신의 저서〈킬리만자 로의 눈>에서 “그 서쪽 봉우리 정상에는 얼어붙은 한 마리의 표범의 시체가 있다”고 적은 데서 비롯됐다는 게 정설이다. 정말로 그 봉우리에 표범의 시 체가 있는지 직접 목격한 사람 은 거의 없으나,한국인들에겐 조용필의 노래로 인해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 됐다.
해발 5,895미터로 아프리카 대륙에서 사장 높은 산. 남위 3ᄋ의 적도지방에 위치한 이 산의 정상은 만년설로 덮혀 있어 신비함을 더해 준다. 이 만년 설로 인해 "빛나는 산" 이란 뜻의 "킬리만자로" 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 킬리만자로를 재호 산악인 이용학씨가 올랐다. 그의 이번 킬리만자로 최고봉 키보산 등정은 한국신문이 후원했으며,한국신문의 로고가 적힌 파란색 깃발이 이용학씨와 함께 정상에 올랐다.
한국신문이 이씨의 등반을 후원하기는 이번이 네번째. 이씨는 지난 2001년, 2003년, 2005년 세 차레 한국신문과 재호 한인 기업들의 후원으로 히말라야 5200미터에 위치한 베이스 캠프까지 올랐다. 특히 '2003년에는 롱북 빙하에 있는 베이스캠프에서 ‘2003 서울 에베레스트 등정대 부대장인 산악인 후배 엄홍길씨와 만나 한국신문 로고가 새겨진 깃발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었다.
그는 자연의 소중함과 경외심을 되새기고, 가능한 지점을 설정해 등정을 시도함으로써 교민 2세들에게 도전정신을 심어주고자 하는 취지로 히말라야 트레킹을 시직했다. 아마추어 산악인들이 트레킹으로 오를 수 있는 한계는 해발 6천미터라고 한다. 이씨는 세차레 히말라야 트레킹에 이어 이번에는킬리만자로를 오른 것이다.
이씨가 그동안 동경의 대상이었던 킬리만자로를 등정한 것은 세 차례의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오는 매너리즘에서 벗어나고 싶었고,헤밍웨이가 이 산을 종주하면서 찾고자 했던 그 무엇을 확인해 보고 싶었기 때문 이라고 했 다 . 그러나 그 역시 "킬리만자로 의 표범" 은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이씨는 지난 8월30일 시드니를 줄발,서울에서 30~40대의 젊은 등반인 4명과 합류,9월5일 인천을 출발 했 다 . 그동안 히말라야 트레킹 때에는 단독 등반이었다. 이씨를 포함한 5명의 킬리만자로 원정대의 신라 승려로 당나라에서 활동하 면서 인도여행기〈왕오천축국 전〉을 남긴 ‘혜초’의 이름을 딴 ‘혜초 트레킹 ’.
이씨 일행은 카타르 도하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무려 21 시간의 비행 끝에 케냐의 나이로비에 도착했다. 나이로비에서 승합차를 이용,다섯 시간 넘게 달려가 국경을 넘어 탄자 니아의 아루사에 도착한 것이 만 하루가 홀쩍 넘은 9월6일. 아루사는 킬리만자로 등정을 위한 입구에 해당한다고 했다.
이씨는 이튿날인 9월7일 본 격적인 등정을 시작해 닷새만 인 9월12일 7시30분(현지시각) 만년설이 덮힌 킬리만자로의 키보 산 정상에 올랐다. 그는 한국신문의 로고가 쓰여진 파란 깃발을 들고 “환영합니다. 여러분은 현재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해발 5,895미터 지점에 서 있습니다” 라고 영어로 적힌 나무표지판 옆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산을 오르는 동안 날씨는 좋지 않았다고 했다. “아래는 비가 내렸고,중턱에 오르니 진 눈깨비가 그리고 정상 부근에 서는 눈을 만났어요. 그러나 정상에 오른 시각에 하늘은 파 란 모습을 안겨주었죠” 함께 등반했던 한국의 젊은 산악인 들과의 호흡도 비교적 잘 맞 아,아주 성공적인 산행이었다 고 그는 덧붙였다. 이씨의 킬리만자로 등정기는 한국신문을 통해 독자들에게 소개될 예정이다.
김인구 기자 [email protected]
킬리만자로는 ...,
케냐와 탄자니아 국경 가까 이에 있으며,중앙의 키보 화산(5,895m〉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다. 가장 최근에 형성된 키보 화산에는 분화구가 있으 며,여기서 안부(鞠部® 따라 11km 떨어진 곳에는 이보다 오래된 마웬시 화산(5,254m)이 있다. 옛 분화구의 잔해인 시라 산(3,778m)은 이제 산마루 로 변했다.
키보 산의 정상은 눈에 덮인 둥근 지붕처럼 보이지만 분화 구에는 너비 1.9km, 최고수심 300m(남쪽 가장자리)의 칼데라호가 있다.
분화구 안에는 얼음덩어리 가 따로 떨어져 녹지 않은 채 남아 있고,서쪽 가장자리에는 빙하가 있다. 그 빙하는 남서 쪽으로 4 , 1 6 7 m 나 내려와 있지 만 북쪽으로는 정상에서 약간 밖에 내려오지 않았다.
킬리만자로에는 산밑에서 정상까지 식물대가 계속 이어 져 있어 고원의 반(半)건조성 관목지대,물이 많고 경작지로 쓰이는 남쪽 기슭,짙은 숲, 탁트인 광야, 이끼 군서지가 차례로 나타난다. 이곳에서는 사냥이 일체 금지되어 있다.
1 8 4 8 년 독일 선교사 요하네 스 레브만과 루드비히 크라프 는 유럽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킬리만자로를 발견했으나,남 위 3 ° 의 적도지방에 만년설에 덮인 산이 있다는 사실이 믿 겨지기까지는 오랜 시일이 걸 렸다.
'1889년 유럽인으로는 처음으로 독인의 지리학자 한스마이어 와 오스트리아의 산악 인 루드비히 푸르첼러가 키보산 정상에 올랐다.
또 마웬시산은 "1912년 독일의 지리학자 프리츠 클루테가 처음 정복했다. 〈출처 / 브리태니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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