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렌의〈아웃 오브 아프리카〉현장에서 [1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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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로비에 가면 꼭 보고 싶었던 카렌박물관(Karen Museum)은 한국가든 에서 자동차로 30분 정도 걸리는 ‘카 렌’이라는 지역에 있다. 박물관이라기 보다 기념관이란 말이 더 어울리는 이 곳에 도착하니 예전에 감명 깊게 보았던 영화〈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장면 들이 떠올라 감회를 새롭게 해준다.
이 영화는 자유롭고도 열정을 가진 덴마크 출신의 ‘카렌 브릭슨’ 이라는 여인이 1900년대 초반 미지의 대륙인 아프리카에서 억척스럽게 커피 경작을 하면서 사랑에 눈뜨는 과정을 집으로 돌아와 회상을 하며 쓴 자전적 소설을 영상으로 옮긴 작품이다.
Out of Africa & Wolfgang Amadeus Mozart
Clarinet concerto in A major,K.622-Adagio
시드니 폴락 감독의 탁월한 연출과 메릴 스트립의 연기력. 로버트 레드포드의 매력이 함께 어우러져 1986년 아카데미 감독상을 포함해 7개 부문을 휩쓸었다. 또 이 작품은 아름다운 아프리카의 풍광을 전 세계에 깊이 심어주면서 관광전도사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필자도 이 영화로 인해 아프리카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케냐의 몸바사에서 떠난 기차가 카렌을 태우고 광활한 아프리카의 황야를 지나가면서 데니스(로버트 레드포드)를 만나는 장면,두 사람이 경비행기를 타고 그 넓은 나쿠루 호수의 플라밍고(홍학)떼가 뒤덮힌 곳을 날아가는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잊지 못할 장면이다.
더욱이 영화의 OST가 모짜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으로 아름다운 선율이 두 사람의 애잔한 사랑 장면과 어우러져 지금도 좋아하 는 클래식 중 하나가 됐다. 이 곡은 모짜르트가 죽기 2개월전인 1791년 10월 초에 비엔나서 작곡한 최후의 작품이면서 클라리넷 협주곡으로는 유일하다고 하니 의미가 더 크다.
더글라스 (운전사)에게 주차장에서 기다리라고 말하고는 자카란다가 흐드러 지게 피어있는 넓은 정원을 가로 질러 본채로 향한다. 평범해 보이는 이 집은 카렌이 1914년에 아프리카에 도착해서 1917년부터 1931년까지 14년간 살았던 곳으로, 한참 뒤에서야 그 가치를 깨달은 덴마크 정부가 구입해 케냐 정부에다 기증했다고 한다,
덴마크 돈에 카렌의 초상화가 실릴 정도로 그의 명성이 대단했다는 것을 이 곳에서 실감할 수 있었다. 15달러 정도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내부는 커다란 카렌의 옛날 사진들과 유품,그리고 그 시절에 사용했던 생활용품과 가구들과 가장 비슷한 것들을 구입해 잘 정돈해 놓았다.
영화 촬영 당시에는 저택이 훼손될까 우려해 똑같은 집을 새로 지어 촬영했다고 하며 집 안 곳곳에 촬영소품도 보인다. 늦은 시간에 동양인이 혼자 들어 와서 그런지 안내인이 옆에서 유창한 영어로 열심히 설명해준다. 크지 않은 집안을 둘러보고 나와 단체관람객이 떠나간 고즈넉한 정원에서 영화의 장면 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패 안내인이 다가와 다짜고짜 커피 머신을 보러가자며 자기를 따라오라고 한다. 생각 없이 뒤따라 가는데 숲속으로 들어간다. 아니 왜 숲속으로.. 하면서 후회를 시작했다. 치안이 불안 한 이 곳에서…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까 그냥 안간다’고 하고 가버릴까? 그러는데 더글라스가 뛰어오며 내뒤에 서준다. 아마 주차장에서 기다리다 현지인과 둘이 숲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걱정이 되어서 달려와 준 것이다.
그렇게 불신속에 도착한 숲속의 커피 머신은 카렌이 1923년에 이곳에서 직접 커피농사를 하며 사용했던 커피 볶는 기계로 지금은 녹이슨 고철덩어리지만 가끔 관광객에게 보여주곤 한다고 했 다. 돌아나오는 발길 속에서 잠시나마 의심했던 마음이 너무나 미안하다.
카렌은 아프리카인을 가장 인간적으 로 대해 주었다고 한다. 자신의 하인중 한 소년을 아프리카 최초의 변호사로 키운 사실이 그걸 증명하고 있다.
존경의 의미로 오랜 전부터 이 지역과 학교와 클럽 등 모든 시설에 ‘카렌’이란 이름이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그만큼 한 여인의 삶의 행적을 사람들이 인정하며 공유하는 건 아닐까-.
영화속 카렌은 병을 고치러 덴마크에 갔다 돌아오지만 실제로는 모든 재산을 하인들에게 나눠주곤 영원히 아프리카를 떠나 고향인 덴마크에서 집필 생활을 했다고 한다. 돌아 나오며 내내 ‘카렌 브릭센’ 이라는 여인의 환영 속에서 지금의 아프리카를 본다.
차에 올라 더글라스에게 "아까는 고마왔다’고 하니 '다음부터는 혼자서는 누구도 따라가지 말라" 고 재차 주의를 준다.
저녁이 다 되어서 돌아온 숙소는 손님들이 대부분 교민들로 활기있게 돌아 가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투숙하며 아프리카에 온지 8년된 교민과 함께 오 랜만에 삼겹살에 소주 한잔 걸치며 아프리카의 정세와 문화 생활 등을 알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프리카 인은 왜 대부분 표정이 없느냐’고 묻자 그는 “처음엔 그렇게 보일 수 있지만 오래되면 그 표정 속에서 편안함을 느 낀다”고 말했다. 역시 아프리카의 고수 다웠다. 빈 소주병이 늘어갈 수록 아프 리카에 대한 ‘한수 가르침’의 열정과 함께 밤이 깊어간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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