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napurna Base Camp

크레바스에 빠진 동료를 구한 "휴먼 스토리" 의 주인공을 만나다 [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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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용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524회 작성일 22-06-05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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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n-mountain-icon.png '2005년 겨울 촐라체 등정했던 박정현씨 손가락 8개와 발가락 잃어 ... 


우리는 미팅 도중에 트래킹 코스를 변경하기로 했다. 원래 코스는 포카라 에서 나야풀로 들어가 고라파니에서 푼힐 전망대를 거쳐 목적지인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까지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이드 람바부가 새로운 코스로 ‘카레 ’에서 오스트랄리아 캠프로 들어가 중간에서 바로 베이스 캠프까지 들어가는 코스를 추천했다.

이 루트는 지도에도 나오지 않은 길 이며 나야풀〜고라파니〜푼힐 전망대 코스보다 하루 정도는 일정을 단축할 수 있고 오스트랄리아 캠프에서 보는 히말라야의 전망이 푼힐보다 좋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지…. 이 런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행운이다.

람바부는 다음 날 우리와 함께 비행기편으로 포카라로 가고 요리사 꾸말은 짐이 많아 포터와 ‘키친 보이(주방보조)들을 데리고 야간 버스로 이날 밤에 먼저 출발하기로 하고 미팅을 마쳤다, 본격적인 산행 일정이 다음 날부터 시작이라 이날 시간이 남는 우리 일행은 관광을 하기로 했다.

 

첫 방문지는 보우더나트. 필자는 가 본적이 있는 카투만두의 5대 관광지의 하나. 다른 사람들에겐 초행이라,이석우가 안내를 맡았다. 티벳 난민들의 집 단거주지인 이 곳에는 네팔에서 제일 큰 스투파(SWpa 탑)가 있고 크고 작은사원들도 많다. 말이 티벳 난민이지 이들의 생활 수준은 현지 네팔인들보다 높아 보인다.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악착같이 살아가는 근면성이 대단해 보였다.

 

다음으로 찻은 곳은 네팔에서 가장 오래된 대표적인 불교사원 스와얌부나트.사원 안에 원숭이들이 많아  『몽키 템풀」 이라고도 부른다. 간혹 원숭이들이 관광객들의 모자나 가방 등을 낚아채 원성을 사는 곳이다. 네팔 사원들은 불교 와 힌두교가 공존하고 있다는 게 특징이 다. 힌두교에서도 부처를 신 중의 하나로 섬기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산 위에 있어 이 곳에서 카투만두 시내를 한 눈 에 내려다 볼 수 있어 전망이 좋다. 이석우가 이 근처에 정말 끝내 주는 ‘뚱바’ 집이 있다고 한다. ‘참새가 방 앗간을 그냥 지날 수가없지 ’ 속으로 쾌 재를 불렀다. ‘뚱바’는 필자가 제일 좋아하는 티벳의 전통술로 기장의 일종인 ‘고또’ 라고 불리는 곡식을 발효해 원형통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대롱으로 빨아 마신다.


두세번 우려낸 다음에 마시는 그 맛이란…. 시큼하면서도 따끈하게 올라 오며 은근하 게 온몸으로 퍼지는 열기 가…. 지금 도 그 맛과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술 이야기만 나오면 얼굴에 생기가 돈다고 반백년 가까이 함께 산 아내의 핀잔이 지금도 계속되니 필자에게 술은 아마 전생에서부터 인연을 맺은 영원한 동반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뚱바’와 처음 만나는 시드니의 친구 최유준과 서울의 후배 박동희 군 부부 에게 열심히 설명하고 권하는데 반응이 필자 생각만큼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 러나 이들도 나중에 타멜 뒷골목 필자 의 단골집에서 ‘뚱바’의 진가를 느끼고 네팔을 떠날 무렵 모두 다시 맛을 보러 오고 싶다고 했다. 이런 것도 히말라야 중독의 일부가 아닐까?

 

이날 저녁 비원식당에서 박정현씨를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카투만두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처음 그를 보았을 때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소설가 박범신이 쓴 ‘출라체 ’의 모티브를 제공한 인물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엔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박정현씨는 지난 2005년 겨을 출라체 북벽을 최강식씨와 함께 등정하고 하산하는 길에 최씨가 크레바스(얼음이 갈라진 틈) 에 빠지자 포기하지 않고 밧줄을 잡아 당겨 극적으로 구출했다. 대 부분 크레바스에 빠지면 살아나오기가 어렵다.. 자칫 도움을 주려던 사람마저 크레 바스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박정현 씨는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동료를 구한 것이다.

그렇지만 동료의 목숨을 구하면서 얻은 영광의 대가는 너무나 가혹했다. 박씨는 자신의 양손의 8개 손가락과 발가락을 동상으로 잘라내야 하는 아픔을 겪었으며,최씨 역시 엄지 손가락 하나 만 남겨놓고 모두 잃었다. 비록 소중한 신체의 일부분을 잃은 불행을 당했으나 이런 휴먼 스토리가 우리에겐 커다란 교훈으로 남는다.

 

내가 살기 위해 위험에 빠진 동료를 못 본 체 하는 사람이 더 많은 세상이다. 더욱이 겨울 산행에서는 두 사람의 목숨을 모두 잃을 수 있어,크레바스에 빠진 동료의 구조를 포기했다고 해서 비난을 받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박씨 는 잠시 전 함께 정상에 올랐던 동료의 위험을 그냥 지나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그가 더욱 더 대단해 보였다. 그 런 사람과 긴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것이 지금도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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