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 『 이용학 』 씨 네번째 히말라야 트래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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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용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401회 작성일 22-05-21 13:21본문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산행기 ’
시드니에 거주하는 산악인 이용학씨가 지난해 11월 히말라야 14좌 중 하나인 안나푸르나의 베이스 캠프(4,200m) 트래킹을 다녀왔다. 이씨의 히말라야 트래킹은 지난 '2001년 이후 네번째다.
그는 지난 2001년 안나프르나 라운드 트래킹으로 토롱라 정상(5,416m)게 올랐으며,이어 '2003년에는 에베레스트 릉북 빙하 베이스 캠프(5200m)를, 그리고 '2005년에는 반대쪽인 쿰부 히말라아(칼리파타르 5,429m)를 다녀 왔다.
이씨는히말라야 트래킹 외에도 2008년에는 헤밍웨이의 소설과 조용필의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 ’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 정상 키보산(5,895m)에 올랐었다.
한국신문은 그동안 이씨의 히말라야 트래킹과 킬리만자로 정상등정을 후원해 왔으며. 이번 안나푸르나 베이스켐프 등정 때에도 한국신문 로고가 적힌 파란색 깃발이 이씨와 함께 했다.
한국신문은 다음주부터 2010년 신년특집으로 이씨의 이번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래킹 기행문을 연재할 계획이다. 한국신문은 2001년과 2003년 이씨의 1, 2차 히말라야 트래킹과 '2008년의 킬리만자로 정상 등정기 등 모두 세차례의 트래킹 기행문을 연재 했었다.
이씨의 이번 히말라야 트래킹은 내년 남미 최고봉 아콩카쿠아(6,960m) 베이스 캠프 등정을 앞두고 이루어졌다.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그렇 게 높은 산에 오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지난주 기행문 연재에 앞서 만난 자리에서 슬쩍 물었다.
“자연의 소중함과 경외심을 되새기고 가능한 지점을 설정해 등정을 시도함으로써 교민2세들에게 도전정신을 심어주고자 하는 취지로 히말라야 트래킹을 시작했습니다.”
1950년 프랑스 원정대 제1봉 첫 등정
아마추어 산악인들이 트래킹으로 오를수 있는 한계는 해발 6천미터. 이씨는 벌써 다섯 차례나 아마추어 알피니스트의 한계까지 도전했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도전은 여전히 진행 형이다.
이번 여정은 자난 11월7일 시드니를 출발해 서울을거쳐 카투만두까지 가서 안나푸르나[Annapurna] 베이스 캠프를 트래킹하고 다시 서울을 거쳐 23일 시드니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이번 트래킹은 이씨와 시드니에 있는 악우 최유준씨, 서울 에 었는 후배 산악인 박동호 최명애씨 부부,그리고 카투만두[Kathmandu]에 거주하는 산악인 후배 이석우씨 등 5명이 함께 했다.
안나푸르나는 히말라야 중부에 줄지어선 고봉이다. 길이가 무려 55km에 달하고, 최고봉인 안나프르나 제1봉의 높이가 8,091m 로 8,000m 이상의 고산을 의미하는 히말라야 14좌의 하나이다.
서쪽에서부터 최고봉인 안나푸르나 제1봉, 안나푸르나 제3 봉(7,555 m), 안나푸르나 제4봉 (7,525 m), 안나푸르나 제2봉 (7,937 m), 강가푸르나(7,455 m)가 연이어 서있고, 안나푸르나 제3봉의 남쪽에서 갈라져 나온 끝에 마차푸차레가 있다.
안나푸르나는 산스크리트어 로 '수확의 여신’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1950년 6월3일 프랑스의 모리스 에르조 (Maurice Herzog)와 루이 라슈날(LouLachenal)이 처음으로 안나푸르나 제1봉 등정에 성공했다. 이는 인류 최초의 8,000m급 등정 기록으로 남아있다. 1924년 등반가들이 에베레스트 산의 8,580m 지점까지 오른적이 있으나 정상 등정은 아니다.
'1978년에는 알렌 브럼(Arlene Blum)이 이끄는 미국등반대가 안나푸르나 등정에 성공했는데 모두 여성으로 구성된 팀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1987년 2월3일 에는 폴란드 등반대가 등반에 성공해 히말라야 고봉 14좌 최초의 겨울 등정으로 기록됐다.
-15th Jun. 2010 - Sydney Korea Herald 김인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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